서하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도윤이 휴대전화 녹음을 켠 뒤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상대는 끊었다.
“사람이 들어 있다는 말, 문자 그대로일까?”
도윤이 묻자 서하는 보관함의 크기를 손으로 그렸다. 책상 서랍만 했다.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목소리겠지. 소리 기록 상자잖아.”
둘은 안심하기보다 더 조심해졌다. 누군가 기증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서하의 녹음도 갖고 있었다.
선욱이 도착한 것은 네 시 오십삼 분이었다. 그는 통화 내용을 듣고 출입 관리 직원에게 연락했다. 건물 외부 출입문을 확인하되 안에 있는 직원들의 퇴로는 열어 두라고 했다.
“다섯 시는 누가 정했지?”
“반출표와 전화요.”
“그럼 우리가 따를 시간은 아니야.”
서하는 그 말을 듣고 시계에서 눈을 뗐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적은 시간 때문에 자신들이 계속 서두르고 있었다.
선욱은 종이컵과 출납표를 비닐 봉투에 담았다. 폐관 준비 때 쓰던 봉인 띠에는 번호가 있었지만 관리대장은 없었다. 같은 띠를 다시 붙였다면 구별할 수 없었다.
“지난주에 비웠다는 것도 기억만으로 확인했네.”
서하는 입술을 눌렀다. 실수를 찾는 말이 자신을 탓하는 말처럼 들렸다. 선욱은 곧 덧붙였다.
“지금부터 셋이 같이 확인하자. 누가 기억했는지 따지기 전에.”
운반 자료를 맞춰 보니 칠십사 번 상자는 새 건물에 간 적이 없었다. 반출 표시는 공용 계정으로 오후 한 시에 수정됐다. 그 시간에는 철거 점검 기사 두 명과 임시 자료 보조 한 명이 들어왔다.
보조의 이름은 류담. 그날 오전에 계약이 끝났고, 오후에는 사물함을 비우러 왔다. 출입 기록에는 한 시 십오 분 퇴실로 남아 있었다.
도윤은 류담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개인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선욱이 인사 기록의 연락처로 전화했다. 신호만 오래 갔다.
서하는 보관함이 어디에 남았는지 찾기 위해 상자 사진을 펼쳤다. 지난주 촬영한 사진에는 붉은 끈이 달려 있었다. 이사 상자 사이에서 눈에 띄게 하려고 묶은 것이었다.
도윤이 사진을 가리켰다.
“이 끈, 오늘 수레에서 봤어.”
수레를 밀던 사람은 기록관 뒤편의 폐기물 운반 담당자였다. 오후 다섯 시에 분류장에서 종이 자료를 실어 가기로 되어 있었다.
셋은 분류장에 전화했다. 차량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붉은 끈이 묶인 플라스틱 상자가 있다고 했다. 서하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전화로 버려 달라고 하셨잖아요. 이름도 말씀하셨고.”
“저는 전화한 적 없어요.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쓴 것 같아요.”
담당자는 상자를 따로 두겠다고 약속했다. 선욱이 차량을 타고 가는 동안 서하와 도윤은 현관에서 기다렸다. 기록관 안쪽의 장치는 꺼져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같은 방송이 울렸다.
“삼십이 번 보관실의 손님은 접수대로 와 주십시오.”
도윤이 어깨를 굳혔다. 서하는 천장을 보지 않고 바닥 쪽으로 몸을 낮췄다. 소리는 위가 아니라 청소 수레 아래에서 나왔다.
수레 바구니 밑에 작은 재생기가 붙어 있었다. 안내 장치의 기록에 남지 않은 이유였다. 도윤은 건드리지 않고 위치를 촬영했다.
재생기에는 가느다란 전선이 이어져 있었다. 전선은 수레 손잡이의 타이머로 들어갔다. 숫자는 열일곱 분 뒤를 가리켰다.
서하는 선욱에게 사진을 보냈다. 도윤은 청소 담당자에게 수레를 누가 옮겼는지 물었다. 오후에 자료 보조가 복도 정리를 도왔다고 했다.
류담을 의심할 이유가 늘었다. 하지만 선욱은 사진을 보고도 이름을 단정하지 말라고 했다. 공동으로 쓰던 공간과 장비였다.
전화가 왔다. 류담이었다.
“제가 녹음한 걸 들으셨죠?”
서하는 스피커를 켰다.
“상자를 왜 버리라고 했어요?”
“그 전화는 제가 안 했어요. 저는 보관실 번호만 녹음했어요.”
“누가 시켰는데요?”
류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자료를 지키려면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고요. 그런데 제가 만든 재생기에는 타이머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