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은은 옥상 문을 열자마자 습도를 확인했다.
온도계 바늘이 스물셋. 오늘은 조금 낮았다.
"괜찮아. 저녁에 올라오면 돼."
혼잣말이 온실 유리에 살짝 맺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바질 화분의 흙을 만져 보았다. 촉촉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 옥상 온실은 원래 주민 자치 예산으로 만들어졌다가, 관리가 안 되어 시들 뻔한 곳이었다. 하도은이 자원봉사로 손을 댄 지 여덟 달. 지금은 허브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이름이 긴 관엽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유리 사이로 들어왔다. 그녀는 물뿌리개를 들고 한 줄씩 물을 주었다. 바질, 로즈메리, 민트. 이름을 불러 주며 물을 주는 습관은 혼자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과가 되었다.
벤치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 어제는 분명 치워 두었는데.
종이를 집어 들었다. 단정한 글씨였다.
「바질 잎이 어제보다 생기 있어 보입니다. 밤에 바람이 세서 창을 조금 닫아 두었습니다. —야간 근무」
하도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간 근무…… 이름이 야간 근무야?"
그래도 메모는 소중히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지난주부터 이런 쪽지가 간간이 생겼다. 물 준 흔적, 넘어질 뻔한 화분을 세워 둔 흔적. 누군가는 이 온실을 밤에 지켜 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녀는 쪽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글씨 끝이 살짝 떨려 있었다. 급한 손으로 쓴 것 같기도 하고, 조심해서 쓴 것 같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옥상에 올라왔다. 온도는 스물넷. 토마토 줄기에 작은 꽃이 하나 더 피어 있었다.
"잘 자라고 있네."
저녁 여덟 시. 그녀는 일부러 늦게 올라갔다.
복도 끝 비상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제복 차림의 남자가 손전등을 끄며 올려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온실…… 보러 오신 분이시죠?"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름표에는 '도현우'라고 적혀 있었다.
"쪽지, 당신이었네요."
현우가 귀를 살짝 붉혔다.
"방해가 되면 안 쓰겠습니다. 밤에 순찰하다 보면…… 식물이 걱정되어서요. 불이 꺼져 있으면 괜히 마음이 쓰입니다."
"방해 아니에요. 오히려요."
하도은은 온도계를 가리켰다.
"내일은 스물다섯을 맞춰 보고 싶어요. 창을 반만 열어 두실래요?"
현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중요한 임무를 받은 사람처럼.
"반요. 정확히 반으로 이해했습니다."
"대충 반이어도 돼요."
"저는 정확한 편이어서…… 자로 재진 않겠습니다. 눈으로 반이요."
그녀가 웃자 현우도 짧게 웃었다. 손전등 빛이 신발 끝에 떨어졌다.
그날 밤, 온실 벤치에는 새 메모가 놓였다.
「창 반. 온도 24.8. 거의 맞춘 것 같습니다. 바질은 향이 더 진해진 기분입니다.」
하도은은 그 종이를 보고, 처음으로 내일 아침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메모 구석에, 아주 작게 물음표가 하나 더 있었다.
「토마토는…… 빨간색이 되는 건가요?」
그녀는 웃으며 연필을 집어 들었다. 답장을 남기기 전이었다. 옥상 문이 바람에 덜컥 소리를 냈다. 누군가 아직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복도를 살짝 내다보았다. 비상구 표시등만 희미했다. 발소리는 이미 아래층으로 사라진 뒤였다.
하도은은 벤치에 앉아 연필 끝을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이름이 적히는 순간, 이 온실은 조금 더 사람이 사는 곳이 될 것 같았다.
주민 게시판에는 아직도 ‘옥상 출입 주의’ 문구가 남아 있었다. 하도은은 그 문구 옆에 작은 안내를 붙이고 싶었다. 온실은 열려 있고, 사람은 천천히 와도 된다는 안내.
현우의 쪽지를 다시 읽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야간 근무 씨. 내일은 이름부터 받자."
바람이 온도계를 스쳤다. 바늘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시작처럼 보였다.